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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약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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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신 타파 운동 === >"산신은 인민을 먹여 살린 적이 없다. 성스러운 숲이란 지주가 인민을 겁주려고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 >1958년 미신 타파 운동 당시 당 선전 포스터의 문구 대약진과 함께 전국적으로 '미신 타파 운동'이 벌어졌다. 표적은 토착 신앙의 산신 사당과, 마을마다 신성시하며 베지 않던 성림(聖林)이었다. 당은 이를 봉건 미신과 지주 지배의 잔재로 규정하고, 사당을 헐어 제련로의 벽돌로 쓰고 성림을 베어 연료로 태우게 했다. 녹기의 난 때부터 토착민 저항의 상징이던 산신 신앙은 혁명 정부에게 늘 불편한 존재였다. 성림은 단순한 신앙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부분 수원지와 산비탈, 마을 뒷산에 자리한 성림은 오랫동안 물길을 붙잡고 산사태를 막는 역할을 해 왔다. 제련로의 연료 수요까지 겹치면서 숲은 몇 달 만에 민둥산으로 바뀌었다. 북부 일부 현에서는 방풍림의 70% 이상이 사라졌고, 남부 산악에서도 숲의 절반 가까이가 베어졌다. 1960년 흑강 유역의 홍수 피해가 그토록 컸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상류 성림의 소멸이었다는 것이 오늘날의 통설이다. 숲이 사라지자 참새와 박쥐 같은 천적도 줄었고, 1959년부터 메뚜기와 멸구가 들끓었다. 방제에 쓸 농약은 이미 동물을 잡는 데 허비된 뒤였다. 굶주린 합작사들은 오리와 물고기를 잡으려고 논과 저수지에 독한 살충제를 풀었고, 그렇게 잡은 오리를 먹은 도시 주민들이 중독되어 숨지는 일도 있었다. 1960년 북부 평야 논의 절반 이상이 충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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